금은 장기적으로 주가지수보다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일까요? 금의 가치를 미국 주식시장과 비교해 보면, 94년 전 S&P 500 지수의 기록이 시작된 이래 대부분의 기간동안 금의 상대가치가 유지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도표 1). S&P 500을 1트로이온스 금괴의 가격(USD)으로 나누어 S&P 500의 달러 가치를 금으로 환산하면, 고점과 저점을 오가는 상대 성과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도표 2).
도표 1: 금은 지난 100년 동안 전반적으로 주가지수 대비 나쁘지 않은 수익률 기록
도표 2: 상승 및 하락 모두 뚜렷한 추세를 보인 S&P 500/금 비율
S&P 500/금 비율은 다양한 경제·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매우 강력한 추세를 보이다가 간헐적인 조정(consolidation) 기간을 거쳤습니다. 상황은 금보다 주가지수에 유리한 경우도,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정학적 안정기, 디스인플레이션, 꾸준한 경제 성장기에는 주가지수가 금보다 수익률이 높았으며, 불안정한 시기에는 금이 더 좋은 수익률을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황이 전환되면 수년, 나아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S&P 500/금 비율의 강력한 추세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주식시장 성과와 통화시장 추세의 패턴이 다르지만, 그래도 금과 비교한 결과에서 동일한 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29년 9월 3일 주식시장이 정점을 찍은 이후 S&P 500/금 비율은 6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1929~1942: 대공황과 추축국의 부상: 1929~1933년 S&P 500은 미국달러 기준으로 86% 하락했습니다. 1933년 출범한 루스벨트 행정부의 첫 번째 조치는 금 대비 “달러” 가치를 온스당 23달러에서 35달러로 평가절하한 것이었는데, 이는 금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52%의 이익을 선사했습니다. 1933~1942년에는 미국이 대공황에서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1942년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추축국이 팽창의 정점에 도달하면서 주식시장이 침체됐습니다.
- 1942~1968: 연합군의 승리, 브레턴우즈와 초강대국의 고정 패리티: 연합군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면서 주식시장이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증시는 한국전쟁과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며 잠시 주춤했을 뿐, 대체로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전후 브레턴우즈 고정환율제가 적용되면서 달러는 온스당 35달러로 계속 고정됐고, 외화는 달러에 고정됐습니다. S&P 500 지수는 달러 및 금 대비 1,165% 급등했습니다.
- 1968~1980: 과열과 스태그플레이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쟁이 맞물리자 미국 경제가 과열됐고, 결국 연속적인 인플레이션 물결이 밀려들었습니다.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금에 대한 미국달러의 고정환율제(페그)는 더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1971년 닉슨 행정부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금 가격이 반등하여, 온스당 35달러로 고정됐던 가격이 70년대 말 80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미국의 베트남 철수, 1973년 아랍 금수 조치, 이란 혁명,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불확실성이 높아진 이 시기에 주가는 넓은 범위에서 횡보했습니다. S&P 500 지수는 금 대비 95% 하락했습니다.
- 1980~2000: 디스인플레이션과 팍스 아메리카나: 이 시기 20년간 S&P 500 지수는 금 대비 4,137% 상승했습니다. 통화 긴축, 인플레이션 하락, 경제성장률 개선을 배경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동안 귀금속 가격은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 2000~2011: 닷컴버블 붕괴, 테러와의 전쟁, 글로벌 금융위기: 이 기간에는 S&P 500 지수가 금 대비 89% 하락했습니다.
- 2011~2021: 팍스 아메리카나 파트 2: 2011~2019년 미국 경제가 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천천히 회복되는 와중에 주가는 급등했고 금 가격은 크게 하락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주가가 하락했지만, 연방준비제도의 재정 부양책과 4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QE) 매입으로 처음에는 금보다 증시가 더 큰 수혜를 입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S&P 500 지수는 금 대비 337%의 초과수익률을 거뒀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S&P 500 지수는 2021년 말부터 2022년까지 금 대비 28% 하락했습니다. “매그니피센트 세븐(Magnificent Seven)”으로 불리는 초대형주들이 2023년 반등을 주도했지만, S&P 500 지수는 달러 기준으로 2021년 고점 대비 약 6% 상승한 2024년 2월 말 현재까지도 금 대비 5%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제 몇 가지는 분명합니다.
- S&P는 금 대비 상승 모멘텀을 잃었습니다.
-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이 미국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면서, 세계는 지정학적 불안정성의 장기화 국면에 진입했을 수 있습니다.
- 미국과 기타 국가들이 저 인플레이션이 유지되는 시기로 돌아갈지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 각국 중앙은행이 40년 만에 최대 규모의 긴축 사이클을 펼친 만큼, 글로벌 경기침체 및 그에 따른 통화완화의 리스크가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고평가된 미국 주식(관련 내용) 대신 금 등의 유형자산에 더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중국, 일본처럼 훨씬 저평가된 주식시장은 어떨까요? 한국의 코스피 지수, 일본의 닛케이 225 지수, 홍콩의 항셍 지수는 금과 비교해보면 저마다의 뚜렷한 추세를 보입니다.
코스피(KOSPI): 한국 증시는 1980년대 후반 4년 동안 금 대비 779% 급등했지만, 1989년 말부터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절정기까지 그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습니다. 한국 증시는 닷컴버블 말기인 1999년과 2000년에 금 대비 3배 이상 상승했다가, 그 이후 버블 붕괴로 시작된 약세장에서 다시 하락했습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금 대비로는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금과 비교하여 예전과 같은 강세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현재 코스피는 금 대비 역사적 저점 부근에 머물러 있습니다(도표 3).
도표 3: 한국 증시는 1980년대에 금 대비 급등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보임
닛케이 225: 1980년대 일본 증시는 금 대비 1,300% 상승했고, 1990년대에는 금 대비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였습니다. 1990년대 일본 증시는 엔화(JPY) 기준으로 50% 폭락했지만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상승했고 달러 가치는 금 대비 상승했기 때문에, 이는 다소 의외의 결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던 일본 증시의 가치는 2000년에 금 대비 정점을 찍었습니다. 2000~2012년 금값이 달러 대비 급등하는 동안 닛케이는 금 기준 90% 이상 하락했고, 엔화 기준으로는 50% 더 하락했습니다. 2012년 이후 일본 증시는 상승세를 보였고 2024년에는 1989년 기록했던 엔화 기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하지만, 금은 온스당 2,000달러 이상으로 상승했고 달러는 엔화 대비 가치가 두 배 가까이 상승했기 때문에, 금을 기준으로 본 일본 증시는 상승세가 무색해졌습니다(도표 4). 금을 닛케이가 아닌 TOPIX와 비교해도 거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도표 4: 일본 증시는 엔화 기준으로 1989년 정점을 찍었지만, 금 기준으로는 2000년에 정점 도달
마지막으로 홍콩의 항셍 지수는 1980~2000년 주가가 급등하고 금값이 온스당 800달러에서 280달러로 하락하면서 금 대비 2,250% 상승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대부분의 성과는 1980년대가 아닌 1990년대에 기록되었습니다. 2000년 이후에는 금 대비 90% 가까이 하락했습니다. 2000~2011년에는 S&P 500 지수와 비슷한 성과를 보였지만, 2011~2021년에는 S&P와 달리 금 대비 전혀 회복하지 못했습니다(도표 5). 이렇게 저조한 성과는, 지난 10년간 미국 이외 거의 모든 주요 주가지수 대비 초과성과를 주도한 S&P의 높은 기술주 비중과 홍콩의 특수한 상황 및 최근 중국 경제의 둔화(관련 내용)가 맞물린 결과로 보입니다. 홍콩 달러는 1980년대 초 33% 평가절하된 이후 1983년부터 달러에 고정되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