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흑해 지역의 곡물 공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 및 천연가스 구매를 대부분 중단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수송 경로도 조정됐습니다. 또한 OPEC+가 원유 생산량을 하루 360만 배럴 감산했으며, 최근에는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으로 홍해의 해운 경로가 일부 변경됐습니다. 이런 상황과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원유, 옥수수, 소맥(밀), 대두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은 수준입니다(도표 1, 2, 3).
도표 1: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2022년 6월 이후 35% 이상 하락한 옥수수 및 원유 가격
도표 2: 2022년 이후 고점 대비 50% 하락한 소맥 가격
도표 3: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한 대두유 가격
여기에는 미국 원유 생산량 급증(도표 4)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의 성장 둔화가 최대 원인으로 보입니다. 또한 생산자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OPEC+와 미국의 시추업자들은 큰 비용 영향 없이 생산량을 빠르게 늘려 수급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스윙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미국, 브라질, 흑해의 농부들은 옥수수, 대두, 소맥 등 작물의 스윙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경쟁 중입니다. 중국은 이 모든 상품들의 주요 소비국이며, 그런 중국의 경제 활동이 최근 약세를 보인다는 것은 알루미늄과 구리 등 다양한 원자재 가격이 긍정적인 공급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전반적으로 하락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도표 4: 미국 원유 생산량 급증으로 OPEC+ 감산량 중 절반에 근접한 수준으로 대체
거의 모든 원자재 가격은 보통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중국의 경제 발전 상황을 추종합니다. 중국의 성장률은 2007년, 2010년, 2017년, 2021년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주요 원자재 가격은 각각 1년 뒤인 2008년, 2011년, 2018년, 2022년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성장이 둔화된 시기에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리커창 지수(철도 물동량, 전력 소비량, 은행 대출을 반영) 등 중국 성장률의 대용지표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도표 5~7에서 WTI 및 리커창 지수 간 상관관계와 12개월 후 다양한 원자재 가격 추이를 나타냈습니다. 다른 원자재 추이는 부록으로 제공합니다.)
도표 5: 일반적으로 약 1년의 시차를 두고 중국 성장률을 추종하는 WTI원유 가격
도표 6: 4~5분기 시차를 두고 정점에 도달하는 중국 성장률과 WTI 가격 간 상관계수
도표 7: 1년 시차를 두고 여러 원자재 가격과 상관관계를 보이는 중국의 성장률
중국 경제는 부채 규모 급증과 주거용 부동산 섹터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의 GDP 대비 공공 및 민간 부문 부채 비율은 유럽과 미국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그 이후 중국의 부채 수준은 유럽과 미국을 넘어섰습니다(도표 8). 한편, 중국의 GDP 대비 부동산 섹터 규모는 1990년대 후반 8%에서 2010년대 중반 30% 수준까지 급등했습니다(도표 9).
도표 8: 미국과 영국을 넘어선 중국의 부채 수준
도표 9: 중국의 부동산 섹터 의존도 급증
중국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하면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건설 활동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 상황이 특히 문제가 됐습니다(도표 10 및 11). 또한 중국의 산업 생산량과 소비자 지출의 성장세도 급격히 둔화되고 있습니다(도표 12 및 13). 게다가 지난 2년간 중국의 수출량은 13% 감소했고 수입량은 17% 가까이 감소했습니다(도표 14).
도표 10: 위축되기 시작하는 중국의 부동산 섹터
도표 11: 급감하는 중국의 건설 활동
도표 12: 급락하는 중국의 산업 생산 성장률
도표 13: 중국의 소비자 지출 감소 추세
도표 14: 중국의 수출과 수입이 감소 추세
이에 더해 낮은 인플레이션, 높은 실질 금리, 주가 하락, 잠재적으로 고평가된 통화 가치까지 중국의 부담을 키우고 있습니다. 물가 하락은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채무자는 빌릴 때보다 가치가 하락한 현금으로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만큼 청천벽력 같은 일입니다. 이 경우 채무 불이행률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50대 부동산 개발업체 중 34곳이 어떤 형태로든 대출 채무 불이행 상태에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 하이일드 채권의 가치가 급락했습니다(도표 15). 채권 가격 하락은 채권금리 상승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한다는 의미입니다.
도표 15: 중국 하이일드 채권 가치 하락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 달러화(USD) 대비 중국 위안화(CNY)의 가치 하락을 예상했을 수도 있겠으나, 실제 하락폭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도표 16). 게다가 전 세계 거의 모든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 중국은 지급준비율을 낮추고 금리를 인하하는 등 완화적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은행(PBOC)의 정책금리는 중국의 근원 인플레이션율보다 여전히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도표 17).
도표 16: 많은 국가가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 상반된 정책을 펼친 중국의 완화적 통화정책
도표 17: 중국의 낮은 인플레이션에도, 금리를 인하했던 중앙은행
미국과 유럽에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의 위기가 닥쳤을 때 각국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낮추고 수년간 물가상승률 이하로 유지해 경제 성장 회복을 실현했습니다. 중국의 중앙은행은 같은 전략을 취하기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금리를 크게 낮추면 위안화 보유자들이 중국에서 자본을 빼고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화 약세와 금리 인하는 내수 경제에서는 합리적인 방향일 수 있지만, 중국 통화를 글로벌 지급준비자산으로 빠르게 키워내려는 목적에는 불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이 중국의 통화 약세를 불공정 무역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경우, 보호주의적 대응이 촉발될 수 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구조 개혁이 거의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GDP 대비 소비자 지출 규모가 60~70%가량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수치가 보통 35%에 가깝습니다. 이와 관련해 소비 지출을 촉진하는 정책이 한 가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 안전망(실업급여, 퇴직금, 의료비 보조금)을 강화해 30%에 육박하는 중국의 가계 저축률을 세계 평균에 가깝게 5% 또는 10% 수준까지 낮추는 것입니다.
중국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코로나19 관련 재정 부양책을 통해 경기를 과열시킨 미국과 달리 중국 정부의 재정 지원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것입니다. 팬데믹이 닥쳤을 때 서방 국가들은 국민들의 낮은 저축률을 감안해 대규모 재정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로 인해 2020/2021년에는 전 세계 소비자 지출과 그에 따른 중국의 생산 및 수출이 급증했고, 이는 2022년 중반까지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반면,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상대적으로 아주 미미했고, 따라서 가정에서는 팬데믹 극복을 위해 개인 저축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중국 경제는 2022년 말 코로나19 봉쇄조치가 해제되면서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저축이 고갈되고,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주식 및 채권 투자 가치가 감소하는 가운데 중국 소비자들이 주거 관련 재정 상태를 안정시키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금방 흐지부지됐습니다.
아마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연준의 525bp 금리 인상 등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급등시킨 결과 세계 경제가 둔화되고 이에 따라 중국 수출 수요가 더욱 감소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비자의 지출이 중심인 공산품에서 서비스 등으로 다시 옮겨가고, 중국 제조업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온쇼어링 및 니어쇼어링 생산 추세가 나타나자 중국 수출은 이미 하방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2024년 중국 경제가 회복될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중국 경제의 향방은 이후 몇 년간 원자재 가격을 움직이는 핵심 요인일 것으로 보이며, 트레이더들은 과거 사례를 참고해 중국의 경제 지표를 주시함으로써 향후 원자재 가격 동향을 한발 먼저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