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의 채광·정제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따라서 금세기 현재까지 구리 가격이 원유 가격과 밀접하게 연계됐던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4개월은 예외였습니다. 2022년 10월 7일 이후 고순도 구리 가격은 파운드당 $3.38에서 $4.00 이상으로 상승한 반면, WTI 원유 가격은 배럴당 $91에서 약 $80로 하락했습니다(그림 1).
그림 1: 최근 확인된 구리-원유 탈동조화는 예외적인 상황
구리 가격과 WTI의 이례적인 탈동조화는 다음과 같은 몇몇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 미국의 인프라 법안 통과(5,500억 달러 이상의 신규 지출 포함)
- 이례적으로 줄어든 구리 재고량
- 중국의 코로나19 제한 조치 완화, 중국 부동산 개발업자의 대출 여건 완화
옵션 트레이더도 이러한 구리시장의 변화를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CME 변동성 지수(CVOL)로 측정한 구리 옵션은 약 26%의 내재 변동성 수준에서 거래됐는데, 이는 2020년 3월 이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입니다. 다만, 대체로 13~20%의 내재 변동성 수준에서 거래되던 팬데믹 이전의 CVOL에 비하면 변동성이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그림 2).
그림 2: CVOL은 CME가 행사가격 전체에서 종합적 내재 변동성을 산출한 새로운 지표입니다.
또한 구리 CVOL은 최근 몇 년보다 다소 높은 수준의 상방 스큐를 시사합니다. 외가격 구리 콜 옵션은 외가격 구리 풋옵션보다 높은 내재 변동성 수준에서 거래되어 왔습니다(그림 3). 언뜻 보기에, 구리 옵션 트레이더는 극단적인 하방 리스크보다 극단적인 상방 리스크에 더 주목하는 듯합니다. 극단적인 하방 리스크는 금리 인상과 건설 부문 건전성에 대한 관련 영향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극단적인 상방 리스크는 공급 부족과 강력한 잠재 수요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그림 3: 상방 내재 변동성이 하방 내재 변동성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중
상방 리스크 1: 미국과 유럽의 인프라 투자 확대
11월 미 의회는 1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써 인프라 지출 예산이 예전에 비해 약 5,500억 달러 증가했습니다. 이 법안에는 미국 전력 인프라 개선 자금 730억 달러와 전기차 보조금 150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항목만으로도 대대적인 구리 수요 증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법안에 따라 도로·교량에 1,100억 달러, 여객·화물 철도에 660억 달러, 식수·용수 저장 시스템 개선에 1,050억 달러가 투입됩니다. 이 항목들도 구리 수요를 다소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이 법안의 투입 자금은 연간 GDP의 거의 5%에 달합니다. 다만, 추가 지출은 몇 년에 걸쳐 투입됩니다. 유럽연합(EU) 국가들도 특히 러시아산 석탄·천연가스 수입이 급감하는 가운데, 인프라 및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상방 리스크 2: 공급 및 재고 부족
재고량이 적고 채굴 공급량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증가하다 보니 구리 가격이 한층 더 상승했습니다. 구리 비축량을 살펴보면, COMEX 재고는 2015년 초 이후 최저 수준입니다(그림 4). 한편, 구리 채굴 공급량은 다른 산업용 금속보다 천천히 증가했습니다(그림 5).
그림 4: COMEX 구리 재고는 8년 최저치
그림 5: 구리 생산량은 1994년 이후 다른 산업용 금속 생산량보다 훨씬 적게 증가함
약세 요인에서 강세 요인으로 전환될 가능성: 중국의 성장과 미국 주식시장
최근 구리시장은 2022년 3~7월 37% 폭락 이후, 약세장으로 여겨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랠리를 보였습니다. 우선, 2022년 중국 경제는 코로나19 봉쇄 조치와 부동산 부문의 급격한 위축으로 인해 수십 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에는 중국이 구리의 약세 요인에서 강세 요인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중국은 거의 모든 팬데믹 제한 조치를 해제하고,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자금을 투입하는 동시에 대출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중국의 구리 수요를 강하게 반등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의 성장 가속화가 구리 시장에 미칠 영향은 아직 불확실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구리 가격은 평균적으로 약 1년의 시차를 두고 중국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그림 6 및 7). 따라서 2023년 중국의 성장 가속화가 구리 가격에 완전히 반영되려면 2024년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림 6: 구리 가격은 중국의 성장률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때로는 1년 이상의 시차가 발생함
그림 7: 구리와 리커창 지수의 상관계수는 약 4분기의 시차를 두고 최고치에 도달함
마지막으로, 만약 구리 재고량이 충분하고 미국이 인프라 지출을 늘리지 않았다면 미국 주식시장 또한 구리 가격의 발목을 잡았을 수 있습니다. S&P 500과 구리는 수십 년 동안 양의 상관관계를 보여 왔습니다. 2022년에는 중국 시장도 부진했지만, 미국 주식시장이야말로 2008년 이후 연간 최대 하락률을 기록하며 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주식시장은 화이트칼라 경제의 상황과 좀 더 밀접하다는 점입니다. 미국 화이트칼라 경제는 2020/2021년에 호황을 누린 후 2022년 말에 다소 위축됐습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치솟자 기술주는 하락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과 다수의 선진국에서 블루칼라 경제가 호황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제조업이 성장하고 녹색 인프라 투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경제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닥터 코퍼(구리)"는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 경제의 건전성을 더 적절히 대표합니다(그림 8 및 9).
그림 8: 구리는 일반적으로 미국 주식시장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짐
그림 9: 강력한 추세에 좌우된 미국 주식시장/구리 비율
주요 하방 리스크: 높은 금리와 이로 인한 글로벌 건설업계의 타격
블루칼라 경제나 구리시장의 모든 상황이 장밋빛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금리 상승은 미국의 신규 주택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켰습니다. 모기지 금리가 2021년 최저치인 3%에서 6% 이상까지 치솟으면서 지난 1년 동안 주택 착공·건축 허가 건수가 25% 이상 감소했습니다(그림 10). 평균적인 미국 가정집 건설에는 구리 약 200kg가 사용되므로, 구리 가격 상승에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그림 10: 금리 상승이 주택 섹터 부담을 가중시킴
또한 유럽·호주·캐나다·중남미를 비롯한 기타 여러 지역에서도 금리가 급등했으니 건설 사업에서 비슷한 영향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게다가 상업시설 및 오피스 건설은 금리 상승뿐만 아니라 팬데믹 이후 통근 방식 및 소비자 행동의 변화로 인해서도 더욱 압박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주택 수요가 감소해 구리 가격 랠리가 반전될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 옵션 트레이더들은 인프라 지출 확대, 중국의 강한 회복력, 구리 재고 부족으로 인한 상방 리스크가 더 우세하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