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유로존 국가,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국가가 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미국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은 전년 동기 대비 9%를 상회하고 있으며, 식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6%대를 기록 중입니다.
그림 1: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
인플레이션은 언제쯤 진정될까요? 지금 그 속도와 시점을 구체적으로 예측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도달했고 앞으로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와 관련하여 관찰한 사항들이 있습니다. 특히, 윌 로저스를 즐겨 인용했던 빌 게이츠의 지혜를 빌리고자 합니다.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땅을 그만 파는 것이다.”
이번 리서치 보고서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 상승의 잠재적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요인 중 다섯 가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땅 파기를 멈춘 것이 맞는지(인플레이션 하락 전환의 핵심 조건이 갖춰졌는지) 기본적인 질문을 확인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이미 땅 파기를 멈췄으며, 이번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요인들은 이제 영향력을 잃고 해결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일부 물가 상승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고 인플레이션 안정까지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더라도, 당사는 인플레이션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낙관하는 바입니다.
1.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소비 패턴의 변화
코로나 대유행은 2020/2021년 미국 경제의 부분 봉쇄를 일으키면서 소비 패턴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여행, 관광, 외식 등이 제한되는 가운데 상품 소비의 상대적 비중이 증가하면서 서비스 소비의 비중은 감소했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12개월 동안 내구재 지출은 2019년도 대비 25% 증가했고 비내구재 지출은 9% 증가했는데, 서비스 지출이 소폭 감소한 상황과 대조적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초기 인플레이션은 내구재에서 가장 두드러졌으며 비내구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더 최근을 살펴보면, 2022년 1월~ 2022년 6월의 내구재, 비내구재, 서비스 지출은 2021년 7월~2021년 12월 대비 각각 9%, 10%, 8% 증가했습니다(연환산 기준). 즉, 세 가지 주요 영역의 지출 증가율이 서로 비슷해진 것입니다.
그림 2: 상품 소비
그림 3: 상품 및 서비스 인플레이션
정리하자면,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상품 지출 호황은 마무리되었고, 팬데믹 이후 미국의 상품 및 서비스 소비는 정상적인 균형을 회복 중입니다. 내구재 지출의 상대적 비중은 다시 낮아지기 시작했지만, 서비스 지출의 상대적 비중은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소비 패턴의 변화는 더 이상 미래 인플레이션을 좌우하지 않을 것입니다.
2. 공급망 붕괴
글로벌 상품 생산 체계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상품(특히 자동차 등 내구재) 수요 급증에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한편, 팬데믹 초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상품의 생산과 운송이 모두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즉, 수요 충격과 공급 충격이 동시에 상품 시장을 덮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자동차 생산이 특히 타격을 받은 결과 중고차 가격이 크게 급등했습니다. 운송의 경우, 고수요 상품 중 다수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었는데, 상하이에서 LA까지의 운송 비용이 급등했습니다. 새로운 컴퓨터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면 수십억 달러와 다년간의 기획 및 건설이 필요하므로 다양한 공급망 문제가 해결되려면 여러 해가 소요되겠지만, 최악의 물가 상승이 끝났다는 명확한 증거 또한 존재합니다. 상하이에서 LA까지의 운송 비용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최고점에 비해서는 꽤 하락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고차 가격의 폭등세도 멈췄습니다. 즉, 가격이 안정된 지점이 최고점 부근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의 상승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공급망 문제가 해결되려면 아마도 몇 년은 더 걸리겠지만, 진전이 나타나고 있으며, 공급망 붕괴로 인한 끝없는 가격 상승이 멈췄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가격이 상승된 상태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만,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되지는 않는 상황입니다.
그림 4: 중고차 가격
그림 5: 배송 비용
3. 팬데믹 긴급 재정부양책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 모두, 2020년과 2021년 초에 수조 달러 규모의 긴급 재정 지출을 단행하여 코로나 대유행이 일자리 상실에 미치는 최악의 영향을 상쇄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긴급 정부 지출의 상당 부분은 개인에 대한 직접적 이전지출의 형태로 집행되었으며, 그중 상당한 금액이 수령 후 수개월 내에 소비되었습니다. 실제로, 2008~2009년의 대침체와 2020년 팬데믹 당시 재정적 대응의 큰 차이는, 개인(실직자 포함)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막대한 규모의 지원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 경제에서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 지출이 팬데믹 이전 최고치까지 빠르게 회복된 반면, 대침체 이후 기간에는 개인 소비 회복이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긴급 재정 지출이 종료되었고 더 이상 연장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국 의회예산처(CBO) 추정치에 의하면, FY2021 기준 $2조 4000억에 달했던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FY2022 기준 $6370억까지 감소하고 2023년에도 더욱 감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의 재정 지출은 분명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으나, 앞으로의 인플레이션에는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림 6: 정부 지출
그림 7: 경기 침체 후 회복 비교
4. 중앙은행 자산매입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대한 중앙은행 자산매입의 영향은 앞으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 발생한 현상은 현대통화이론(MMT) 실험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대규모 지출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할 때, 그 자금 조달 방식을 증세, 민간 대상 채권 매각, 중앙은행 대상 채권 매각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중앙은행 대상 채권 매각을 현대통화이론이라고 부르며, 2020/2021년 미국에서 현실화되었습니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신규 지출을 주로 미 연준이 지탱하여, 민간을 통한 신규 차입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정부 지출이 폭증하고 이와 연동하여 중앙은행이 대대적으로 채권을 매입하는 경우, 가격발견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때,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지 않고 증세도 없을 경우, 민간 매각 국채가 추가적으로 공급되면서 채권수익률이 더(아마도 대폭으로) 상승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됩니다. 그렇게 채권수익률이 상승하여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올라갔다면, 2021년에 나타난 주택시장 과열은 없었을 수도 있으며, 이는 주택 매입과 관련된 내구재 수요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의 자산매입이 정부 지출 확대를 뒷받침하려는 목적인 경우와 재정정책과 무관한 경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양적완화(QE)는 2010~2016년에 대대적인 자산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재정 지출이 동반되지 않는 양적완화는 실물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거나 소비자물가 상승을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2010~2016년과 달리 2020~2021년 미 연준의 자산매입이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이러한 자산매입과 정부의 대규모 신규 지출이 서로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중앙은행의 자산매입이 향후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현재 미 연준은 대차대조표를 축소하고 있으며, 따라서 해당 원인의 발생은 멈췄습니다.
그림 8: 연준 자산
그림 9: 미 연준 자산의 월별 변동
5. 금리정책(그리고 통화정책의 지연)
마지막 관찰사항은, 미 연준이 단기금리 제로 근접 시대의 막을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완화적 금리정책이 미래 인플레이션의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동인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미 연준의 2022년 단기금리 인상이 금리정책의 “공격적 긴축”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기금리가 기대인플레이션에 대한 합리적 예측보다 낮은 수준이라면, 제로금리보다는 덜하더라도 분명 완화적인 금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미 연준은 2022년 1~7월에 실효 연방기금금리를 약 0.10%에서 2.33%까지 인상하는 과정에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뿐이지 아직 브레이크를 밟지는 않았다고 해석하며, 통화정책의 긴축보다는 완화적 정책의 회수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입니다.
어떤 해석을 선호하든 간에, 미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금리정책은 회수되는 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금리정책의 변화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일반적으로 길고 다양한 시간차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두 배로 상승했지만, 주택시장에 대한 장기적 영향은 아직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금리 상승이 실물경제에 미칠 장기적 영향이 무엇이든 간에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림 10: 연방기금금리
그림 11: 내재 기대금리
결론
이렇게 과거 및 미래 인플레이션에 대한 다섯 가지 잠재적 요인(팬데믹에 따른 소비 변화, 공급망 차질, 재정정책 확장, 중앙은행 자산매입, 미 연준의 금리정책)을 살펴본 결과, 핵심적인 관찰사항은 단 하나입니다. 각 요인은 지난 6~12개월 동안 방향이 바뀌었으며, 현재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에서 어떤 역할을 했든 간에, 더 이상 미래 인플레이션의 동인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즉,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이 땅을 그만 파는 것이라는 윌 로저스와 빌 게이츠의 말에 빗대면, 땅 파기는 이미 중단된 상황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상당히 끈질길 수 있고 목표대로 진정시키기 어려울 수 있으나, 현재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의 근원으로 지목된 모든 요인은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해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