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두유 등의 식물성 기름 가격은 WTI 원유와 그 정제 상품 가격의 선행 지표일까요? 원유 시장의 미결제 약정 규모는 대두유 시장에 비해 25배 규모임에도(달러 기준), 대규모의 시장이 식물성 기름의 가격을 추종한다는 사실이 터무니없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도표 1).
도표 1: 2020년 이후 원유의 달러 기준 미결제 약정은 대두유에 비해 평균 약 25배에 달함
하지만 지난 한 해만 되돌아봐도 흥미로운 패턴이 몇 가지 있습니다. 2023년 5월 30일 대두유 가격은 57% 랠리를 시작하여 7월 24일 정점을 찍었습니다. 원유는 2023년 6월 24일부터 9월 27일까지 41% 상승하면서 대두유의 상승세를 1~2개월 늦게 따라왔습니다. 대두유 가격은 2023년 8/9월에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9월 말부터 시작된 원유 가격 하락을 예고했습니다. 이후 유가 하락세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도 불구하고 2024년 가을까지 지속됐습니다.
대두유가 원유 가격에 선행하는 패턴은 2023년부터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도표 2). 그 시작점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 의회는 에너지 독립·안보법(the Energy Independence and Security Act, EISA)을 통과시켰는데, 그 법안에는 각각 옥수수유와 대두유에서 생산될 수 있는 에탄올과 바이오디젤 등의 재생가능 에너지를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습니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장려하는 국가는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약 65개국에서 일종의 바이오에너지 의무화를 시행합니다. 이런 규정 중 상당수가 2005~201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도표 2: 대두유 가격은 원유 가격의 선행 지표일까?
2005/2006년 원유 가격은 크게 상승한 반면, 대두유 가격은 횡보했습니다. 2006년 말과 2007년에는 원유 가격이 급격한 조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미국이 EISA 법을 제정하면서 대두유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원유 가격도 뒤따라 상승했습니다. 대두유 가격은 2008년 1월 고점에 도달하였고, 원유는 6개월이 지난 2008년 7월에 사상 최고점에 도달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하락하던 기간에는 대두유 가격이 2008년 12월에 먼저 바닥을 터치하였는데, 원유가 2009년 2월 저점을 기록했던 것보다 2개월여 앞섰습니다. 2009년 가격이 반등하는 과정에서는 대두유가 여러 차례 소폭 등락을 이어갔는데, 원유 가격도 그보다 조금 늦게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도표 3).
도표 3: 2008년 대두유 가격은 원유보다 먼저 고점과 저점에 도달함
대두유 가격은 2010년 6월 29일부터 2011년 2월 9일까지 66% 상승했고, 뒤이어 원유 가격은 2010년 8월 24일부터 2011년 5월 2일까지 61% 상승했습니다. 이후 대두유 가격의 긴 하락세가 시작됐는데, 이는 2014년 말 OPEC의 감산 합의 무산 후 나타난 유가 폭락의 예고편과도 같았습니다. 이어진 약세장에서 대두유 가격은 2015년 10월 큰 하락세를 보였고, 원유 가격도 그 뒤를 이어 2016년 2월 저점에 도달했습니다. 2009년과 마찬가지로, 2016년 가격 회복기에도 대두유 가격이 원유보다 먼저 고점과 저점에 도달했습니다(도표 4).
도표 4: 대두유 가격은 2010년 원유보다 먼저 고점에 도달했고, 2015년 원유보다 먼저 저점에 도달함
2017년과 2018년 초, OPEC은 생산량을 줄였고 WTI 가격은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대두유는 이 상승세에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말, 높은 수준의 글로벌 재고와 OPEC 회원국 간 분쟁으로 인해 원유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대두유와 원유 가격은 모두 폭락했지만, 대두유 가격은 원유 가격보다 한 달 먼저 저점을 향했고, WTI보다 먼저 2020년 말에 반등했습니다. 이후 2022년에는 대두유가 원유보다 먼저 정점에 도달해 5월 초 고점을 기록했고, 원유는 6월 말에 고점을 기록했습니다. 그 후 2022년 말과 2023년 초에는 대두유의 하락세가 원유보다 선행했습니다(도표 5).
도표 5: 대두유는 2020년대에도 원유보다 먼저 고점과 저점에 도달함
대두유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선행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이오 에너지 및 두 시장의 상대적 규모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대두유가 바이오디젤로 사용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원유 수급이 조금만 변동해도 가격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 시장의 중심에는 세계 최대의 정유회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원유 및 정유 상품의 단기 과부족 가능성을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정제 상품 수요에 비해 원유 공급이 부족할 것 같다고 판단하면, 이 회사들은 바이오 에너지로 원유 공급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대두 시장은 원유 시장의 약 1/25 크기이므로, 원유 가격이 후행하기 전부터 상승세를 보이며 반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유회사가 원유 공급 과잉을 예상하는 경우, 바이오 에너지에 크게 의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대두유 구매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대두유 가격은 마치 유가 하락을 예고하듯이 유가보다 먼저 하락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바이오 에너지로 널리 사용되는 팜유(도표 6)와 초저유황 디젤(난방유)에도 비슷한 상관관계가 있어 보입니다(도표 7~9). 식물성 기름과 원유 및 그 정제 상품 가격 사이의 뚜렷한 상관관계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근 대두유와 팜유 가격의 약세는 원유와 디젤 가격의 단기 반등이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